세상에는 당신의 것이 싫은 사람이있다. 반경 5 미터 이내에도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 만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도 왠지 그 것을 알고있다. 그렇지만 하트 부분은 쉽게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좋은 사람뿐. 내 것을 좋아하는 사람 만 생각 싶은 것이 본심 일 것이다.
나도 '모난 돌은 맞는다'속담대로 몇 번 쳐왔다. 지금도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있지만, 여러 번있는 사람에게 방해되어있다. 당신도 뭔가 일을 진행하려고 할 때 방해를했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행동하거나 주장을 비판하거나 방해 할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악의는 전혀 없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풍파를 세우는 것은 자주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왕따도, 발단은 왕따 사람이 왕따 사람에 대해 특별히 뭔가 한 것은 아니다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왠지 자신과 다른 자신과 같은 행동을하지 않는 등 구체적인 이유없이 시작된 것이 많은 것이 아닐까.
그러면 실제로 사람에서 비판을 할 때 방해를 할 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 것일까. 대답은 "관점을 바꾸어 본다"이다. 무엇의 정교한 버렸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영화 나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있으면 반드시 악당도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앞길을 막기 위해 여러가지 방해 해 온다. 반면, 주인공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책을 생각한다. 결과 목적을 달성 할 것이다.
이건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방해되면 잘 가지 않게되면, 관점을 바꾸어 다르게 해 본다. 이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다른 방식으로 일하면 당초 생각 해본 방법보다 능숙하게했다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다른 방법의 선택에 물론 '도망'이라는 것도 들어있다. 별 무리를하고 나서는 필요는 전혀 없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하면, 내가 중학교 한 학년 때 클래스 중에서 무시했기 때문에 잠시 학교에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꾀병을 사용하여 쉬고 있었지만, 부모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쉬기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게되었다. 그렇게 상처받은 자신을 회복시켰다. 결국 나의 경우는 버릴, 또 학교에 갔는데 그대로 가지 않게되어 버렸다고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지금은 생각하고있다.
그것보다 자신을 보호 할 쪽이 상당히 중요하다. 동안 왕따에 대항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당히 강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면 좀처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도망쳐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가는 편이 좋은거야.
또한 비판과 비방을 받았다하더라도 가능한 "읽지 않은 듣지 않는 블록 '등을하여 스루 해 버리면 좋을 것이다. 무리해서 비판과 비방을 받고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안 것은, 시원스럽게 굴 버리는 것이다. 뭔가하려고하면 방해가 들어갔다. 또 수 없다 든가. 주위로부터 비판을받는 것이 힘들므로 다른 중지 든가. 모처럼 행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아깝다.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판을 받기도 방해를하거나하면 외로움을 느껴 버리는 것도 많이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외로움은 뭔가를하고 계속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느낄 것이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고독에 겁 먹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종종 도전을 계속하고 구조선이 들어간다. 확실하게 비판 해 오는 사람도 많이 나오지만, 도와주는 사람도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다. 바로 버리는 하나님 있으면 데리러 하나님이 있구나.
모처럼 용기를 가지고 시작한 도전이다. 중상이나 방해에 굴하지 않고 창 계속 보자 잖아.